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르투갈령 마카오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포르투갈령 마카오(Macao Portuguesa)는 [[1557년]]부터 [[대항해시대]] 당시 [[포르투갈 왕국]]이 이 지방에 진출하여 영유권을 행사한다. [[영국]]이 [[홍콩]]을 점유한 것과 다르게 [[포르투갈 왕국]]이 이 지역을 무력으로 [[식민지]]로 삼은 것은 아니고[* 사실 호르헤 알바레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지금의 [[홍콩]] [[신계(홍콩)|신계]]지역인 튄문, 당시 [[광동성]] 신안현 둔문진에서 행패를 부리다 [[광저우]] 총독이 보낸 수군에 의해 격퇴당하고, [[조총]]과 [[불랑기포]] 등을 압수당한 바 있다. 이후 협상을 통해 알바레스는 마카오로 갔다.], 되려 [[포르투갈 왕국]]이 [[명나라]]의 환심을 사서 영유권을 얻었다. 그 뒤를 이은 [[청나라]]도 서양과의 무역과 무기 수입 등 교섭을 위한 창구[* 청은 포르투갈 대포인 [[불랑기포]]와 네덜란드 캘버린의 중국 버전인 [[홍이포]] 그리고 [[조총]] 때문에 [[영원성 전투]]에서 명과 몽골 연합군에 대패했고 [[누르하치]]도 홍이포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. 청나라는 이후 명나라 항장인 [[홍승주]], 상가희 같은 사람들 및 그들이 데려온 총포 제조법을 익힌 철공들을 이용해서 홍이포 및 불랑기포와 조총을 대규모로 확보한다. [[병자호란]] 때 [[남한산성]]에서 농성중이던 [[조선군]]은 청군의 홍이포 맹포격에 전의를 상실했고, 결국 [[삼전도의 굴욕|굴욕적인 항복]]을 한다.]가 필요했기 때문에 마카오에 개입하지 않았다. 이후 [[아편전쟁]]의 대가로 [[영국]]이 [[홍콩]]의 영유권을 받아내는 것을 보고 자극 받은 [[포르투갈 왕국]]이 이 지역에 대한 식민지배의 권한을 요구했다. 당시 [[영국]]에 처참히 패배하여 나라가 어수선했던 청나라는 별다른 분쟁없이 이 땅을 포기한다. 당시 포르투갈도 [[아편전쟁]]에 참여할 제스처를 보이자 당황한 청 황제는 당초 조차지가 아닌 근해의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까지 포함시켜 할양해줬다. 이후 이 땅은 [[포르투갈]]의 정식 해외주로 편입된다. [[1849년]]부터 [[1999년]]까지 대략 150년 동안 [[포르투갈]]의 식민지였다.[* 포르투갈이 자국 영토임을 선언한 것은 [[1849년]]이나, [[청나라]]가 영유권을 인정한 것은 [[1862년]]이다. 다만 이 10여 년의 시간동안 따로 분쟁은 없었다.] 이후 [[1975년]] [[카네이션 혁명]]으로 해외 식민지 포기선언을 한 포르투갈이 중국 대륙의 새 주인인 [[중화인민공화국]]에 반환 제의를 했다. [[덩샤오핑]]이 홍콩과 함께 [[일국양제]]를 적용해 돌려받기로 합의, [[1999년]] 포르투갈이 [[중국]]에 마카오를 반환하면서 식민지 시대는 끝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